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문단 편집) === [[바그라다스 전투(기원전 203년)|대평원 전투]] === [[우티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스키피오는 전의를 상실한 우티카 수비대의 항복을 받아냈다. 얼마 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용된 4,000명의 켈티베리아 용병대가 카르타고에 도착하자, 카르타고인들은 스키피오의 군대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진격하는 걸 저지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전투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시팍스 역시 누미디아에서 병력을 규합하여 카르타고군과 합세해, 총 3만의 군대를 확보했다. 기원전 203년, 스키피오는 본국으로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휘권을 유지한다는 통보를 받은 뒤 우티카에서 출진해 카르타고로 진격했다. 양군은 50여 년전 로마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바그라다스 평원에서 조우했다. 카르타고군 사령관 하스드루발 기스코와 누미디아 왕 시팍스는 켈테베리아 용병대를 중앙에 배치했고, 카르타고-누미디아 보병과 기병을 측면에 배치했다. 스키피오는 이에 맞서 [[하스타티]]가 전열에, [[프린키페스]]가 중간에, [[트리아리]]가 후방에 배치되는 대열을 편성하고, 기병대를 본대에서 약간 떨어진 양측면에 배치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 기병대는 적의 측면에 배치된 카르타고-누미디아 기병대를 향해 맹돌격하여 단숨에 무너뜨리고, 중앙 대열에 포진한 켈테베리아 용병대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용병대가 맹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상당한 손실을 입고 패퇴했다. 이에 스키피오는 라일리우스에게 보병대를 이끌고 용병대를 쳐부수라고 명령했다. 하스타티와 프린키페스가 용병대와 전면에서 맞붙는 사이, 트리아리가 용병대의 측면으로 이동하여 공세를 퍼부었다. 용병대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귀순을 청했다. 그러나 앞서 그들에게 입은 손실이 큰 것에 분노한 스키피오는 섬멸 명령을 내렸고, 용병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극소수 외에 전멸했다. 전투에서 완패한 뒤,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카르타고로 달아났고 시팍스는 키르타로 도피했다. 스키피오는 본대를 이끌고 카르타고를 압박했고, 가이우스 라일리우스와 마시니사는 키르타로 쳐들어갔다. 시팍스는 키르타 부근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였으나 끝내 패배했고, 도주하려다가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로마군에게 체포되었다. 마시니사는 키르타에 입성한 뒤 누미디아의 군주로 재등극했다. 이후 약혼녀였던 소포니스바와 재회하자마자 결혼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사로잡힌 시팍스로부터 자신이 로마를 배신한 것은 소포니스바가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이며, 그녀는 마시니사더러 카르타고와 손잡으라고 설득할 것이라는 경고를 접한 후 그녀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에게 소포니스바가 시팍스의 배신에 연루되었으니 로마로 끌고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그녀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마시니사는 자비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신이 그녀를 처리할 테니 말미를 달라고 요청해 승인을 받아냈다. 그 후 마시니사는 충직한 하인에게 독약과 전말을 설명하는 편지를 건넨 후 소포니스바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소포니스바는 하인으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직후 독약을 마셨다. 소포니스바가 자살한 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를 누미디아의 유일한 왕으로 선포했고 로마 원로원도 이를 추인했다. 그 후 마시니사는 로마의 충실한 동맹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맹세했 대평원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시 인근의 투네트에 진을 쳤다. 이에 압박감을 느낀 카르타고 정부는 스키피오에 사절을 보내 협상을 요청했다. 스키피오는 한니발과 마고 바르카 형제를 카르타고에 귀환시키고 히스파니아를 완전히 포기하며, 탈영병 및 로마에서 도망쳐 온 노예를 돌려보내고, 포로를 교환하며, 해군은 20척으로 축소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카르타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고 로마에 사절을 보내는 한편, 한니발과 마고에게 조속히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이후의 상황에 대해 리비우스와 아피아노스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인들이 한니발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스키피오에게 전쟁을 지속하라고 명령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원로원은 스키피오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뒀고 스키피오는 평화를 이루기로 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인들이 폭풍으로 피해를 입은 로마 함대를 공격하고 스키피오의 사절을 모욕하면서 휴전이 깨졌다고 한다. 이후 한니발이 도착하자, 카르타고 정부는 한니발이라면 스키피오를 거뜬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여기고 전쟁을 감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